메인 엑스포과학공원 다시 보는 엑스포 대전엑스포93 성과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간의 장정을 마친 대전엑스포'93은 과학기술, 경제, 문화, 환경, 지역 발전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긍정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국제박람회 기구도 대전엑스포´93의 성과를 압축하여 전문 엑스포인 대전엑스포´93이 행사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여느 엑스포보다 우수해 사실상 종합 엑스포와 다름이 없었고 더욱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 미래 엑스포의 시범적 모델이 되었다고 평가하여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대전엑스포´93은 짧은 준비 기간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예산 부족 그리고 개최 배경의 정치적 성격 등이 논란이 되면서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회의적인 전망과 소극적 참여 의식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출발하였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깃발을 올린 대전엑스포´93은 ´88서울올림픽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치러지는 국제 규모의 행사일 뿐만 아니라 그 준비 및 운영에 소요되는 재정 규모가 약 2조 원에 달해 엑스포 개최가 제 분야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에 대전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는 대전엑스포'93이 한국 사회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 기관인 산업연구원에 의뢰하여 두 차례에 걸쳐 개최 효과를 분석하기도 하였다.
대전엑스포´93은 성공적인 마감을 하였다. 전문 엑스포 사상 최대인 108개 국과 33개의 국제기구가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 경제, 문화, 행정의 폭넓은 참여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전문 엑스포로서는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아울러 상업적인 무역박람회로 시작된 엑스포가 문화예술, 환경보전, 개척 정신 등으로 기업과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인류의 번영을 위한 축제라는 새로운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는 대전엑스포'93 개최의 기대 효과로
산업연구원은 이같은 조직위원회의 목표를 뒷받침하여 대전엑스포´93의 경제적 효과로 생산 유발액이 3조 643억 원, 이로 인한 소득 유발액이 1조 2,500억 원이며 21만 2,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국제수지에 미치는 영향도 수입 유발액 4,455억 원으로 장기 국제 경쟁력 향상 등을 통하여 국제수지 개선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았다.
더불어 관광 산업의 발전, 과학기술의 개발과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같은 기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대전엑스포'93 직접 관련 사업인 회장 건설 등에 4,000억 원을 투자한 외에도 정부는 기반 시설 확충 사업에 2,000억 원, 고속도로 확장 등 주변 여건 조성 사업에 7,000억 원을 투자하였다. 국내의 전시 참가자들도 전시관 건설에 모두 3,000억 원을 투자하였으며, 1,400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들도 총 2,800억 원 정도를 소비하여 이를 모두 합하면 대전엑스포´93 개최를 위한 직·간접 투자 비용은 2조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대전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는 대전엑스포´93이 경제 분야에 미친 효과를, 엑스포 회장을 찾는 외국의 바이어 및 업계 인사들에게 수출 한국의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수출을 증대시키는 한편, 첨단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발전의 단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나아가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촉진, 수출 증대 및 미래 산업화 사회에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단기적인 효과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들인 투자는 그 경제적 효과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대전시의 경우 국고 지원을 받아 도로 등 도시정비 사업을 빨리 마무리, 지역 경제 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또 서울∼대전 간 경부고속도로 확장, 한밭대로·계룡로 등 중부권 거점 도시인 대전 일대 도로의 신설 확장으로 기업의 물류비용 절감 효과도 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도 국제 수지의 개선, 전자 정보통신, 첨단 미래 산업 및 관광 사업 등 엑스포 관련 사업의 발전, 경제 협력의 다변화, 지역 경제 발전 등의 직접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엑스포는 상품 전시와 무역 거래를 목표로 하는 무역 전시회와는 달라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당장의 직접적인 효과보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난다고 분석하였다.
한편 국내 기업들에 미친 대전엑스포´93의 영향도 적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엑스포´93은 국내 기업으로 하여금 첨단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의욕을 증진시킴으로써 국내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기술 개발 투자는 기술·지식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돼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 산업 구조를 선진국형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참가 기업들은 주요 해외 바이어들을 초청, 엑스포를 관람시키고 실질적인 경제 협력 활성화 방안을 협의하는 등 엑스포를 경제 협력 확대와 홍보 활동의 장으로 활용했다. 또한 그룹당 최고 3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독립 전시관을 운영한 민간 대기업의 경우 각 전시관별 50만∼100만 명씩의 관람객을 수용,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엑스포 기간 중 외국인 관람객은 물론 바이어와 외국 산업계 주요 인사의 방문으로 국산 제품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엑스포 기간 동안 각국의 통상 관련 장관 경제계 원로 등 200명이 넘는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박람회장을 방문했다. 이들 주요 인사의 대전엑스포'93 방문은 즉각적인 수출입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통상 기반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대전엑스포'93을 찾은 외국 바이어는 90여 개 국 2,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국내 수출업체들과 6,000만 달러의 상담을 전개, 500만 달러 상당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한국의 무역 기반이 취약한 지역으로부터의 상담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밖에 엑스포 기간에 외국 관광객들의 입국도 늘어나 관광 수입을 유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1993년 들어 7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외국인 입국자 수는 대전엑스포'93이 개막된 8월에 33만 5,000명으로 92년 같은 기간에 비해 6.8% 늘어났으며 9월에는 29만 4,000명이 입국해 15.8% 증가했다.
“대전엑스포´93은 과학기술이 보다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것으로,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었다” 라고 오명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그의 저서 『엑스포와 미래 이야기』에서 언급하였다. 엑스포 개최 방침을 확정 발표했던 정부 또한 대전엑스포´93의 파급 효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 국민에 대한 과학 교육 효과라고 판단하였다.
이렇듯 대전엑스포´93 개최의 밑바탕에는 과학기술의 대중화, 즉 과학기술에 대한 취약한 국민 인식을 제고시키려는 지상 명제가 담겨 있었다. 대전엑스포´93은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적어도 머잖아 실용화될 첨단 기술 제품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더욱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단지 전시물을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기기를 다루거나 실습을 통해 원리와 작동법을 이해하게 하고 컴퓨터가 만든 가상현실 시스템을 직접 시험해보거나 첨단 영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세계 등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한 전시 기법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관람객의 47%를 차지한 어린이, 청소년 등 차세대 주역들에게 던진 과학적 충격은 지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엑스포 회기 중인 9월 26일 발사에 성공한 과학 로켓 ‘우리별 2호’와 연계된 우주 항공기술 분야의 전시로 부가가치가 높은 이 분야의 기술 발전을 꾀하고 21세기를 대비하는 최첨단 과학 교육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대전엑스포´93에서 선보인 과학기술 산업이 기술의 파급 효과가 크고 가까운 장래에 실용화가 가능한 분야 중 국내 기술로 개발한 것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소음과 공해가 없고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첨단 미래 교통수단인 자기부상열차, 전기 자동차, 태양전지 자동차, 태양전지 거북선 등은 우리의 자체 과학기술로 개발해 관람객들에게 차세대 교통수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부제인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을 통해 엑스포 사상 처음 부각시킨 과학과 환경의 조화 이념은 개발 일변도로 달려오느라 환경 재앙의 기로에 선 우리 사회에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대전엑스포'93은 화장실 전자감응 장치 시설에서부터 폐타이어 등 산업 폐기물을 이용한 보도블록까지 회장 전체를 자원 절약과 재활용 시범의 장이 되도록 꾸며 관람객이 회장을 누비는 동안 자연스레 환경과 자원 문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도 아울러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준비 기간 중 계속 제기되었던 문제로는 국내 전시관이 주로 첨단 영상 위주의 전시 연출에 치중함으로써 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별 2호’ 등 우리 자체의 과학기술이 부각되지 못하고 사물놀이 로봇과 같은 국내 중소기업의 노력이 대중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대전엑스포´93 개최를 계기로 대전은 새로운 수요 창출과 도시 기반 정비, 시민의식 향상, 문화 창달 역량 재고 등 눈에 보이는 변화와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계기를 포착하게 되었다.
대전엑스포´93 개최지 대전직할시는 엑스포 기간 중 하루 평균 20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무리 없이 소화해냄으로써 대전 시민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첨단 과학기술, 신 에너지 개발, 환경보존 기술 등 20세기를 주도할 내용으로 구성된 엑스포를 대전 지역에서 개최했다는 것은 서울 중심의 발전 구조에서 지방 분산 발전의 계기가 됨으로써 그 자체로서도 자못 의의가 컸다.
대전엑스포´93이 실제로 대전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은 막강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대전엑스포´93은 대전시의 발전을 최소한 10년은 앞당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전시가 엑스포를 계기로
대전시의 연평균 지역 개발비가 1,500억 원인데 비해 그 10배가 넘는 돈이 3년 동안 집중 투입된 것이다. 그 결과 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이 대폭 확대된 것은 물론 도시 환경도 전면 정비됐고 국제적인 행사를 치름으로써 시민의식도 한 차원 높아졌다. 대전 인터체인지에서 유성 인터체인지로 이어지는 왕복 10차선의 한밭대로를 비롯, 대전에서는 처음 선보인 자동차 전용도로인 갑천 우안 도로, 대덕대로 등이 새로 개설되었다. 또 대전∼신탄진 간 도로, 계룡로 등이 확장되는 등 모두 17개 노선 73㎞가 신설 또는 확장돼 교통체증을 크게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런 기반 시설 확충이 생산과 고용 등을 유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흉한 모습과 악취를 유발하던 갑천 등 대전 도심의 3대 하천은 하천 정비 사업으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밖에 서울, 부산 등에 비해 문화행사가 빈약했던 대전에서 모두 2,600여 차례에 걸쳐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열렸다는 점도 적지 않은 성과로 지적되었다. 엑스포를 계기로 대전 지역 곳곳에 새로운 공연장과 전시장이 잇따라 문을 열어 대전의 문화와 예술을 풍성하고 신명 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에 세워진 우송예술회관을 시작으로 대형 공연시설과 상설 소극장, 전시실 등 10여 곳이 문을 열었다. 그중 엑스포를 계기로 건립된 ‘대덕과학문화센터 콘서트홀’과 ‘엑스포극장’은 대전의 대표적인 공연시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좋은 교통 여건에 온천, 계룡산, 공주 부여 등을 아우르는 백제 문화권, 대덕 연구단지와 국립중앙과학관 등을 갖추게 된 유성은 엑스포 이후 과학공원이 들어섬으로써 앞으로 관광 도시로서의 전망을 실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대전 지역에 미친 경제 사회 문화적 효과 외에 엑스포가 대전 지역의 학생 및 주민의 미래지향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발달에 큰 영향을 준 것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성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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